홈페이지 하나를 두 달 걸려 넘겼다. 검수도 끝났고, "고생하셨습니다"라는 말도 들었다. 그런데 정산일이 지나고, 다음 달 정산일도 지났다. 전화를 하면 담당자는 늘 회의 중이고, 카톡은 읽음 표시만 남는다. 통장은 조용하고, 다음 일은 손에 안 잡힌다.
1인기업이나 프리랜서, 작은 가게를 하다 보면 이 순간이 한 번은 온다. 문제는 대부분이 "관계가 깨질까 봐" 아무것도 안 하고 몇 달을 흘려보낸다는 것이다. 그러다 상대 회사가 정리되거나, 시효가 지나거나, 담당자가 퇴사해 버린다.
돈을 받아내는 일은 감정이 아니라 절차다. 순서를 알면 생각보다 덜 무섭고, 비용도 생각보다 훨씬 적게 든다. 이 글은 그 순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정리한 것이다.
미수금은 화를 낸다고 들어오지 않는다. 기록을 남긴 사람에게 들어온다.
0단계: 지금 당장 해야 할 건 독촉이 아니라 '증거 정리'
전화부터 하고 싶겠지만, 순서를 바꾸자. 먼저 30분만 들여 증거 폴더를 만든다. 나중에 어떤 절차로 가든 결국 필요한 게 이것뿐이다.
- 계약서·발주서·견적서 (없으면 그 대신 아래 것들이 계약서 역할을 한다)
- 카톡·문자·메일 — 특히 "이 금액으로 진행해 주세요", "언제까지 드릴게요" 같은 문장
- 산출물 납품 기록 (메일 첨부, 전송 기록, 검수 확인)
- 세금계산서·거래명세서 발행 내역
- 통화 녹음 (본인이 대화 당사자면 녹음은 합법이다)
계약서가 없어서 포기하는 사람이 많은데, 실무에서는 메신저 대화만으로도 계약 성립과 금액이 인정되는 경우가 흔하다. "그때 그 얘기"를 캡처로 붙잡아 두는 게 계약서 못지않게 중요한 이유다.
여기서 하나 더. 스크린샷은 날짜가 보이게, 대화 흐름이 끊기지 않게 저장한다. 앞뒤가 잘린 캡처 한 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1단계: 시효 시계부터 확인한다 — 생각보다 짧다
많은 사람이 "상거래니까 5년쯤 되겠지" 하고 여유를 부린다. 그런데 물품대금이나 용역·제작대금 같은 채권은 상법의 5년이 아니라 민법 제163조의 단기소멸시효 3년이 적용되는 것이 원칙이다.
3년은 길어 보이지만, "언젠간 주겠지" 하고 미루다 보면 순식간이다. 게다가 시효는 거래 건별로 따로 흘러간다. 작년 3월 건과 올해 1월 건은 각각의 시계를 가지고 있다.
여기서 흔한 오해 하나. 내용증명을 보내면 시효가 멈춘다고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은데, 정확히는 민법상 '최고'에 해당해 임시로 멈출 뿐이다. 최고일로부터 6개월 안에 지급명령 신청 같은 다음 조치를 하지 않으면 시효중단 효력이 사라진다. 내용증명은 방아쇠일 뿐, 그 자체가 결승선이 아니다.
2단계: 내용증명 — 압박이자, 무엇보다 증거
내용증명은 "이런 내용의 문서를 이 날짜에 보냈다"는 사실을 우체국이 증명해 주는 우편이다. 그 자체에 법적 강제력은 없다. 그런데도 실무에서 효과가 큰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상대가 태도를 바꾼다. 전화와 카톡은 무시할 수 있지만, 회사 주소로 도착한 우편물은 대표나 경리 담당자의 책상에 올라간다. 담당자 개인 선에서 뭉개던 일이 갑자기 조직의 일이 된다. 실제로 몇 달 연락이 없던 곳에서 발송 일주일 만에 "분할로라도 드리겠다"는 연락이 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둘째, 다음 단계의 재료가 된다. 지급명령이든 소송이든, "성실히 청구했지만 상대가 응하지 않았다"는 기록은 강력하다.
내용증명에 꼭 들어가야 할 것은 다섯 가지다.
| 항목 | 내용 |
|---|---|
| 당사자 | 내 이름·주소, 상대 상호·대표자·주소 |
| 채권 발생 경위 | 언제 어떤 일을 맡아 언제 납품했는지 |
| 청구 금액 | 원금과 발생일, 부가세 포함 여부 |
| 지급 기한 | "본 서면 수령 후 14일 이내" 같은 구체적 기한 |
| 불이행 시 조치 | 지급명령 신청 등 법적 절차 예고 |
감정적인 문장은 빼는 게 좋다. 협박으로 읽히는 표현은 오히려 발목을 잡는다. 사실 → 금액 → 기한 → 예고, 이 네 덩어리면 충분하다. 우체국에서 같은 문서 3부(상대용·우체국 보관용·내 보관용)를 준비해 보내거나, 인터넷우체국에서 온라인으로도 보낼 수 있다.
3단계: 지급명령 — 소송보다 싸고 빠른 지름길
내용증명에도 반응이 없다면 법원으로 간다. 이때 바로 소송을 떠올릴 필요는 없다. 지급명령(독촉절차) 이라는 훨씬 가벼운 문이 있다.
지급명령은 법원이 서류만 보고 "이 돈을 지급하라"는 명령을 내려주는 절차다. 법정에 출석하지 않아도 되고, 상대가 2주 안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그대로 확정돼 확정판결과 같은 효력을 갖는다. 이 확정된 서류가 있어야 비로소 상대 계좌나 재산을 압류할 수 있다.
비용이 가장 큰 장점이다. 지급명령 신청서에 붙이는 인지액은 같은 금액으로 소송할 때 인지액의 10분의 1이다. 예를 들어 300만 원을 청구한다면 소송 인지액은 300만 원 × 0.5% = 1만 5천 원이고, 지급명령은 그 10분의 1인 1,500원 수준이다. 여기에 송달료가 별도로 몇만 원 붙는 정도다. 대법원 전자소송 사이트(ecfs.scourt.go.kr)를 이용하면 인지액을 10% 더 아낄 수 있고, 집에서 신청서를 작성해 제출할 수 있다.
주의할 점도 있다. 상대가 이의신청을 하면 지급명령은 효력을 잃고 정식 소송으로 넘어간다. 다투는 사정이 뻔히 보이는 상대(예: "일 결과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계속 주장하는 곳)라면, 지급명령을 거치는 게 시간 낭비가 될 수도 있다. 반대로 상대가 금액 자체는 인정하면서 그냥 안 주고 버티는 유형이라면 지급명령이 가장 효율적이다.
4단계: 소액사건심판과 그 다음
이의가 들어왔거나 처음부터 다툼이 예상된다면 소송으로 간다. 다행히 청구액이 3,000만 원 이하면 소액사건심판 절차가 적용된다. 절차가 간소화돼 있고, 배우자·부모·형제자매 같은 가까운 가족이 소송대리를 할 수 있는 특칙도 있다. 변호사 없이 진행하는 사람도 많다.
그리고 상대의 재산이 사라질 위험이 보인다면 — 이를테면 사무실을 정리한다거나, 다른 곳에도 대금을 못 주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면 — 판결을 기다리는 대신 가압류를 먼저 검토해야 한다. 이겨도 압류할 재산이 없으면 종이 한 장만 남는다. 이 판단은 시점이 전부라, 이 단계에서는 변호사나 법률구조공단 상담을 한 번 받아보는 게 훨씬 낫다. 대한법률구조공단(132)은 무료 상담을 제공한다.
5단계: 다음번엔 이 상황을 만들지 않기
미수금을 한 번 겪고 나면 대개 이런 습관이 생긴다. 이번 일이 끝나기 전에 세 가지만 바꿔두자.
- 선금 구조로 바꾼다. 계약금 30~50%, 중도금, 잔금. 최소한 착수금은 받고 시작한다. 이것 하나로 리스크의 절반이 사라진다.
- 금액과 기한을 글로 남긴다. 정식 계약서가 부담스러우면 메일 한 통이라도 좋다. "말씀하신 대로 총 000원, 납품 후 익월 말일 지급으로 진행하겠습니다"라고 보내두면 그게 곧 증거다.
- 지연이자 조항을 넣는다. "지급 기일 경과 시 연 12%의 지연손해금" 한 줄이 실제 회수 속도를 바꾼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가장 효과가 컸던 습관 하나. 정산일 다음 날 바로 정중하게 확인 메일을 보내는 것이다. 한 달 미룬 뒤 연락하는 사람과, 하루 지나 확인하는 사람을 상대는 다르게 대한다.
정리하며
순서를 다시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다. 증거 정리 → 내용증명 → 지급명령 → (이의 시) 소송 → 강제집행. 대부분의 미수금은 앞의 두 단계, 그러니까 우편 한 통에서 끝난다.
돈을 달라고 말하는 게 무례한 일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이미 일을 마친 사람이 대가를 청구하는 건 갈등이 아니라 정산이다. 상대를 미워하지 않으면서도 절차는 또박또박 밟을 수 있다. 오히려 그렇게 담담하게 진행하는 쪽이 관계도 덜 상한다.
이 글은 작성 시점(2026년 9월) 기준의 일반적인 절차 안내이며, 개별 사안의 결과를 보장하지 않습니다. 금액이 크거나 상대의 재산 상태가 불안한 경우에는 대한법률구조공단(132)이나 변호사 상담을 먼저 받아보시길 권합니다.
오늘 하루, 미뤄둔 그 청구서 하나만 꺼내 보셔도 충분합니다. 시작은 늘 폴더 하나 만드는 일이더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