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아홉 시, 안방에서 영상 통화를 하다가 화면이 모자이크가 됐다. 거실로 나오니 멀쩡하다. 다시 안방으로 들어가니 또 끊긴다. 그 순간 대부분의 사람이 같은 생각을 한다. "인터넷 요금제를 올려야 하나."

그런데 통신사에 전화해 속도 측정을 받아보면 대개 이런 답이 돌아온다. 회선까지는 계약한 속도가 정상적으로 들어오고 있다고. 문제는 회선이 아니라 그 신호가 공유기를 떠나 내 방까지 오는 마지막 10미터에 있는 경우가 많다. 오늘은 그 10미터를 순서대로 손보는 이야기다.

인터넷 속도와 와이파이 속도는 다른 말이다

집으로 들어오는 인터넷은 벽의 단자에서 끝난다. 그다음부터는 공유기의 몫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인터넷이 느리다"고 말할 때, 실제로는 두 개의 서로 다른 구간을 뭉뚱그려 말하고 있는 셈이다.

구분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노트북이 있다면 공유기에 랜선을 직접 꽂아 속도를 재보자. 여기서 계약한 속도가 나온다면 회선은 정상이고, 범인은 무선 구간이다. 랜선에서도 느리다면 그때 통신사에 연락하면 된다.

회선을 바꾸기 전에 확인해야 할 것은 요금제가 아니라, 공유기가 서 있는 자리다.

기가 요금제를 쓰는데 폰에서 100Mbps대가 나온다고 손해 보는 건 아니다. 영상 스트리밍은 4K도 25Mbps 안팎이면 충분하다. 문제가 되는 건 절대 속도가 아니라 끊김과 지연이다. 영상 통화가 깨지고, 게임에서 순간 멈춤이 생기고, 페이지 첫 화면이 늦게 뜨는 증상들이다.

2.4GHz와 5GHz — 멀리 가는 신호와 빠른 신호

공유기 설정에 들어가면 같은 이름의 와이파이가 두 개, 요즘은 세 개까지 보인다. 뒤에 _5G가 붙은 것과 안 붙은 것. 이 둘은 성능의 우열이 아니라 성격의 차이다.

대역속도도달 거리·벽 통과어울리는 기기
2.4GHz느림멀리 가고 벽에 강함스마트플러그, CCTV, 창고·화장실
5GHz빠름벽 두 개 넘으면 급격히 약해짐폰, 노트북, TV, 콘솔
6GHz가장 빠름사실상 같은 방 안최신 폰·노트북 (Wi-Fi 6E/7)

주파수는 높을수록 데이터를 많이 실어 나르지만, 그만큼 장애물에 약하다. 물리 시간에 배운 그대로다. 낮은 음은 벽 너머에서도 웅웅 들리지만 높은 음은 문 하나만 닫아도 사라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래서 실전 규칙은 이렇게 정리된다. 공유기와 같은 층·같은 방 근처에서 쓰는 기기는 5GHz, 벽 두세 개 너머에 있거나 신호만 겨우 닿으면 되는 기기는 2.4GHz. 6GHz는 2020년 10월 국내에서 비면허 대역으로 개방됐고 Wi-Fi 6E·7 기기에서 쓸 수 있는데, 거리에는 더 약하므로 공유기 바로 옆에서 큰 파일을 옮길 때 빛을 본다.

참고로 2.4GHz는 전자레인지, 블루투스 이어폰, 무선 마우스, 오래된 무선 공유기들이 전부 함께 쓰는 대역이다. 아파트에서 와이파이 목록을 열었을 때 이웃집 이름이 스무 개쯤 뜬다면, 그 방은 이미 신호가 서로 밀치고 있는 방이라고 봐도 된다.

공유기 위치 — 가장 싸고 가장 효과 큰 처방

많은 집에서 공유기는 현관 옆 신발장 안이나 TV 뒤 선반 구석에 들어가 있다. 설치 기사가 단자함 가까운 곳에 놓고 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호는 공유기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퍼지므로, 집 구석에 두면 신호의 절반은 옆집과 복도로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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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길 때 기준은 네 가지다.

  • 집의 중앙에, 가능하면 가슴 높이 이상으로. 바닥에 두면 신호가 가구에 먼저 부딪힌다.
  • 금속과 물에서 떨어뜨린다. 냉장고, 철제 선반, 어항, 대형 거울은 신호를 특히 잘 막는다.
  • 닫힌 수납장 안에 넣지 않는다. 통풍이 막히면 발열로 성능도 함께 떨어진다.
  • 전자레인지와는 최대한 멀리. 2.4GHz가 겹친다.

단자함이 현관에 있어 옮길 수 없다면, 랜선을 몇 미터 연장해 공유기만 거실 쪽으로 빼는 방법이 있다. 5천 원짜리 랜선 하나가 새 공유기보다 나은 결과를 내는 집이 실제로 적지 않다.

그래도 방까지 안 닿는다면 — 확장기와 메시

가로로 긴 아파트, 복층, 벽이 두꺼운 구옥이라면 위치를 아무리 바꿔도 한계가 온다. 이때 선택지는 크게 둘이다.

와이파이 확장기(리피터)는 기존 신호를 받아 다시 뿌린다. 값이 싸고 설치가 쉽지만, 받은 신호를 되뿌리는 구조라 속도가 대체로 절반 아래로 떨어지고, 방을 옮길 때 기기가 알아서 갈아타지 않아 "신호는 잡혔는데 안 되는" 상태가 생기기 쉽다.

메시 공유기는 두세 대가 하나의 이름으로 묶여, 이동하면 알아서 가까운 쪽으로 넘겨준다. 값은 더 나가지만 체감 만족도는 확실히 높다. 여기에 한 가지 조건이 붙는데, 메시 기기끼리도 무선으로 연결되면 그 구간에서 속도를 나눠 쓴다는 점이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메시 기기 사이만이라도 랜선으로 잇는 방식(유선 백홀)이 가장 안정적이다. 방마다 인터넷 단자가 있는 아파트라면 이 방법을 먼저 검토해 볼 만하다.

오늘 저녁에 해볼 수 있는 점검 순서

거창한 장비를 사기 전에, 순서대로 30분이면 끝나는 점검이 있다.

  1. 공유기를 껐다 켠다. 전원을 뽑고 30초 뒤 다시 꽂는다. 몇 달간 켜둔 공유기의 성능 저하는 생각보다 흔하다.
  2. 연결된 기기 수를 센다. 요즘 집은 폰·노트북·TV·에어컨·로봇청소기·스마트플러그까지 십수 대다. 안 쓰는 기기는 정리한다.
  3. 2.4/5GHz를 용도대로 나눈다. 같은 이름으로 합쳐져 있다면 분리해 이름을 다르게 두는 편이 관리하기 편하다.
  4. 공유기 관리자 페이지에서 펌웨어를 확인한다. 보안 취약점 수정이 대부분 여기로 온다.
  5.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점검한다. 잠기지 않은 와이파이는 속도 문제 이전에 보안 문제다.
  6. 공유기 나이를 확인한다. 5년 이상 됐다면 교체가 가장 확실한 해결책이 되기도 한다.

정리하며

와이파이가 느린 집의 원인은 대개 요금제가 아니라 위치·대역·기기 수, 이 세 가지 안에 있다. 순서를 다시 적으면 이렇다. 랜선으로 회선부터 확인하고, 공유기를 집 중앙 높은 곳으로 옮기고, 가까운 기기는 5GHz·먼 기기는 2.4GHz로 나누고, 그래도 부족하면 메시를 고민한다.

오늘 저녁 공유기를 신발장에서 꺼내 거실 선반 위로 올려두는 것만으로 안방 통화가 멀쩡해지는 집이 꽤 많다. 돈 한 푼 들지 않는 처방이니, 새 공유기 장바구니는 그다음에 열어도 늦지 않다.

본문의 기술 사양은 작성 시점 기준이며, 제품·통신 환경에 따라 실제 성능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