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때, 회사 동료 한 명이 부산행 KTX 표를 끊어 놓고도 끝내 영화를 한 편도 못 보고 돌아왔다. 예매 날짜를 놓쳤고, 현장에 가니 보고 싶던 작품은 전부 매진이었다. 그가 남긴 건 해운대 바닷가 사진 몇 장과 "다음엔 제대로 준비하겠다"는 다짐뿐이었다.
영화제는 극장과 비슷해 보이지만 규칙이 꽤 다르다. 상영작 대부분이 정식 개봉 전이거나 국내에서 다시 보기 어려운 작품이고, 좌석은 한정돼 있으며, 한 편당 상영 횟수도 두세 번뿐이다. 그래서 준비한 만큼 보이는 축제라는 말이 딱 맞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를 처음 찾는 사람을 위해, 알아 두면 덜 헤매는 것들을 정리했다.
올해 영화제, 기본 정보부터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BIFF)는 2026년 10월 6일(화)부터 15일(목)까지 열흘간 열린다. 메인 무대는 해운대구 센텀 일대의 영화의전당이고, 주변 극장과 행사장까지 묶어 도시 전체가 상영관이 된다.
개막작은 김종관 감독의 신작 〈낮과 밤은 서로에게〉다. 세계 최초 공개(월드 프리미어)이며, 조용하고 섬세한 정서를 다뤄 온 감독의 색깔이 짙게 묻어나는 작품으로 소개됐다.
눈여겨볼 변화는 경쟁부문이다. 오랫동안 비경쟁 영화제의 성격이 강했던 부산은 2025년 경쟁부문을 새로 만들었고, 올해가 두 번째다. 아시아 각국에서 온 13편이 본선에 올랐는데, 한국·일본·중국·대만·인도네시아·우즈베키스탄·이란 등 출신이 다양하다. 영화제의 무게중심이 '아시아 영화를 발견하는 자리'로 한층 뚜렷해졌다는 뜻으로 읽힌다.
예매는 '두 번의 오픈'을 기억할 것
올해 예매는 두 단계로 나뉘어 열렸다. 먼저 개·폐막식과 야외 상영, 심야 상영, 배우 토크 행사 같은 인기 프로그램이 열렸고, 이어 일반 상영작 예매가 시작됐다. 인기작은 오픈 몇 분 만에 매진되는 일이 흔하다.
영화제 티켓팅의 승부는 예매 당일이 아니라, 그 전날 밤 '보고 싶은 목록'을 얼마나 추려 놓았느냐에서 갈린다.
이미 예매가 끝났다고 포기할 필요는 없다. 영화제 기간에는 취소표가 꾸준히 풀린다. 특히 상영 전날 밤과 당일 아침에 자주 나온다. 공식 예매 사이트를 틈틈이 새로고침하는 것만으로도 매진작을 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현장 판매분이 따로 배정되는 상영도 있으니, 가고 싶은 작품이 있으면 공식 사이트의 예매 안내를 꼭 확인하자.
작성 시점 기준 알려진 가격대는 일반 상영이 1만 원 선이고, 토크 행사나 심야 상영, 개·폐막식은 그보다 비싸다. 세부 요금과 할인 조건은 해마다 달라질 수 있으니 공식 안내를 기준으로 삼는 게 안전하다.
섹션 이름만 알아도 고르기가 쉬워진다
상영작이 수백 편이라 목록을 처음 열면 막막하다. 이때 도움이 되는 게 '섹션'이다. 섹션은 영화를 성격별로 묶어 놓은 서랍 같은 것이라, 내 취향에 맞는 서랍부터 열면 된다.
| 섹션 | 이런 사람에게 |
|---|---|
| 갈라 프레젠테이션 | 화제의 대작·스타 감독 신작을 먼저 보고 싶다면 |
| 아이콘 | 이름만 들어도 아는 거장의 신작이 궁금하다면 |
| 경쟁 | 아시아 영화의 '지금'을 가장 날것으로 보고 싶다면 |
| 한국영화의 오늘 | 극장가보다 한발 앞서 한국영화를 보고 싶다면 |
| 월드 시네마 | 유럽·미주 등 비아시아권 신작이 궁금하다면 |
| 미드나잇 패션 | 호러·스릴러·장르물을 밤에 몰아 보고 싶다면 |
| 오픈 시네마 | 야외 대형 스크린에서 축제 분위기를 즐기고 싶다면 |
| 와이드 앵글 | 다큐멘터리·단편·실험영화를 좋아한다면 |
처음이라면 '큰 작품 하나 + 모르는 작품 하나' 조합을 권한다. 아는 이름의 영화로 만족감을 챙기고, 정보가 거의 없는 작품에 한 번쯤 도전해 보는 식이다. 영화제의 진짜 재미는 대개 뒤쪽에서 나온다. 개봉관에서는 절대 만나지 못했을 영화가 그해의 '인생 영화'가 되는 일이 생각보다 자주 일어난다.
GV와 부대 행사, 영화 밖의 영화제
영화제만의 특별한 경험을 꼽으라면 단연 GV(관객과의 대화)다. 상영이 끝난 뒤 감독이나 배우가 무대에 올라 관객 질문을 받는다. 방금 본 장면의 의도를 만든 사람에게 직접 묻는 경험은 생각보다 강렬하다. 예매 페이지에서 GV가 붙은 회차를 따로 표시해 주니, 같은 작품이라면 GV 회차를 고르는 게 이득이다.
상영 외 행사도 풍성하다. 배우가 자신의 연기 인생을 이야기하는 '액터스 하우스', 거장 감독의 창작론을 듣는 '마스터 클래스', 야외무대에서 배우와 감독이 인사하는 '야외무대인사'와 '오픈 토크' 등이다. 올해도 국내외 감독과 배우들이 이름을 올렸다. 야외 행사 중에는 별도 예매 없이 볼 수 있는 것도 있어, 표를 못 구한 날의 좋은 대안이 된다(행사별 참여 방식은 공식 안내 확인).
하루 동선 짜기: 욕심보다 여백
첫 영화제에서 가장 흔한 실수는 하루 다섯 편을 욕심내는 것이다. 한 편이 끝나면 GV가 이어지고, 다음 상영관까지 이동하고, 입장 줄을 서는 시간까지 더하면 시간표는 금세 빠듯해진다. 밥은 편의점 삼각김밥으로 때우게 되고, 네 번째 영화쯤엔 졸음과 싸운다.
현실적인 기준은 하루 2~3편이다. 상영 사이에는 최소 1시간 이상의 여유를 두고, 상영관이 다른 건물이면 이동 시간을 넉넉히 잡자. 센텀 일대는 영화의전당, 백화점 문화홀, 주변 극장이 가까이 모여 있지만, 인파가 몰리는 주말에는 예상보다 오래 걸린다.
챙기면 좋은 것도 있다.
- 얇은 겉옷: 10월 부산의 밤바람과 냉방이 센 상영관 모두 대비된다.
- 보조배터리: 모바일 티켓, 취소표 확인, 지도 검색으로 배터리가 빠르게 준다.
- 작은 메모장: GV 질문이나 인상 깊은 장면을 적어 두면 여운이 오래 간다.
- 입장 시간 체크: 상영 시작 후 입장이 제한되는 경우가 많으니 10분 전 도착이 기본이다.
관람 매너, 모두의 영화를 위해
영화제 관객은 대체로 몰입도가 높다. 그만큼 작은 소음에도 민감하다. 휴대폰은 무음이 아니라 전원을 끄거나 비행기 모드로 두는 편이 좋다. 화면 밝기 하나가 뒷줄 여러 명의 시야를 방해한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바로 일어서지 않는 것도 영화제의 불문율에 가깝다. 제작진 이름이 끝까지 올라가는 동안 박수를 치는 풍경은 부산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장면이다. GV에서 질문할 때는 짧고 구체적으로, 스포일러가 될 만한 내용은 조심하는 것이 좋다.
마무리: 한 편이라도 '제대로' 보기
정리하면 이렇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는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경쟁부문 두 번째 해를 맞아 아시아 영화에 더 힘을 실었다. 예매를 놓쳤다면 취소표와 현장 판매를 노리고, 섹션으로 취향을 좁히고, GV 회차를 고르고, 하루 2~3편으로 여백을 남기자.
영화제는 많이 본 사람이 이기는 대회가 아니다. 낯선 나라의 낯선 이야기 한 편이 마음 한구석에 오래 남는다면, 그걸로 충분히 성공한 여행이다. 올가을 부산에서 당신의 한 편을 만나길 바란다.
상영 일정, 가격, 행사 구성은 작성 시점 기준이며 변경될 수 있습니다. 최신 정보는 부산국제영화제 공식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세요.


